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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의 연생이에 대해..

중종 1506.9-1544.11
부인 : 10명 / 자녀 : 9남 11녀

중종은 10명의 부인과 20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그 면면을 보면 여인천하에서 자주 보았던 이름들이 제법 나옵니다.

중종의 첫번째 부인은 단경왕후 신씨인데 폐비당합니다. 아버지인 신수근이 연산조의 영의정이며 중종반정의 반대파라 주살되어 결국 폐비당했다가 영조때 복위됩니다. 중종과 사모의 정이 있어 폐비된후 인왕산의 바위에 붉은 치마를 걸어놓고 중종은 경회루에 나가 그 치마를 봤다고 합니다. 뭐 딴여자때문에 곧 잊었다고 하는데 단경왕후는 평생 걸었다고 하네요.

두번째 부인이 장경왕후 윤씨인데 1남1녀로 제12대 인종과 효혜공주를 낳았습니다. 애낳고 죽죠.

그래서 얻은 세번째 부인이 문정왕후 윤씨입니다. 1남4녀를 낳았는데 제13대 명종과 의혜공주,효순공주,경현공주,인순공주를 낳았습니다. 유명한 왕후죠.

그리고 네번째 부인이 경빈 박씨입니다. 복성군. 혜순옹주. 혜정옹주를 낳았습니다.

다섯번째가 희빈 홍씨. 근성군, 봉성군을 낳았고 여섯째가 창빈 안씨. 영양군, 덕흥대원군(선조아버지), 정신옹주 를 낳았고 일곱째가 숙의 홍씨로 해안군을 낳고 여덟번째가 숙의 이씨 덕양군을 낳았고

아홉번째가 숙원 이씨로 정순옹주, 효정옹주 를 낳았습니다. 열번째는 숙원 김씨로 숙정옹주를 낳았죠.

여기서 대장금 드라마에서 연생이 아홉번째 부인인 숙원 이씨로 나옵니다.
다만. 숙원 이씨는 중종실록에는 거의 기록이 전무합니다. 효정옹주나 이름이 잠시 등장하죠.
한마디로 별볼일 없다는 건데… 조선조 방목에 이름이나 나와있는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이백선 이고 숙원이씨 자신은 1520년 졸했습니다.
첫딸인 정순옹주는 송인이랑 결혼하고 효정옹주는 조의정과 결혼했구요.
1520년은 중종 15년으로 일찍도 죽었죠.정순옹주는 중종 21년 12월 4일 결혼하고.
효정옹주는 중종 39년에 죽습니다. 다만. 이때 애낳다가 죽는데. 중종이 제법 사랑했는지..조의정이는 개박살납니다.

중종39년 2월 19일자 실록에 보면.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 순원위 조의정은 성품이 광패하여 여러해 동안 도에 어긋난 행동을 많이 저질렀으므로 내가 훈계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여겨서 훈계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허물을 고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4∼5년 전부터는 옹주의 여비(女婢)인 풍가이(豊加伊)를 첩으로 삼아 사랑하면서 옹주의 거처를 비복(婢僕)처럼 대우하고 풍가이의 거처를 옹주처럼 대우하여 가도(家道)를 문란시켰으니,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자신을 경계시키기 위하여 비첩 풍가이는 내수사(內需司)에서 치죄하도록 하고, 그는 외방에 내쳐 잘못을 고칠 것을 기대했다. 의정은 그래도 징계되지 않고 즉시 종을 보내 몰래 풍가이를 데려다가 집에다 두었다. 이것도 진실로 그의 죄이지만 나는 나이 어린 부마(駙馬)의 광패한 소치라고 생각하고 용서하여 죄를 다스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내심 기뻐하면서 이 때부터 옹주를 더욱 박대하였다. 그가 옹주가 죽는다면 이 첩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지가 이미 오래되었었다.
  이번 달이 옹주의 출산 달이므로 의녀를 보내려고 했더니 의정은 한마디 상답(上答)도 않다가 오늘 병이 위독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와서 고하였다. 즉시 의녀를 보내 그 집에 당도하니 의정이 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고, 의원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중로에서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의정의 행위가 매우 수상쩍으니 금부에 내려 추고하라. 풍가이는 아무리 의정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옹주와는 종과 주인의 분수가 있는데 의정의 사랑을 믿고 항상 옹주를 능멸하고 거처를 문란케 하여 소박받게 하고 죽게까지 하였으니, 아울러 금부에 내려 추고하라.”
  【사신은 논한다. 이때 투기(妬忌)가 성행하였는데 대궐이 더욱 심하였다. 부마들은 모두 첩을 두지도 못하고 조금이라도 범하는 자가 있으면 혹독한 형벌을 가하여 아들과 어미가 함께 곤장 아래서 죽는 이도 있었다. 의정은 연소하고 성질이 광패하여 비첩(婢妾)을 사랑하다가 여러 차례 견책을 받았으나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옹주가 정숙하여 투기하지 않고 잘 보호하여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옹주가 산후증(産後症)으로 갑자기 죽자 즉시 그의 첩과 함께 금부에 가두고 지난날의 잘못을 낱낱이 적발하면서 죽게 된 사유를 추문했다. 그리하여 사건이 장차 예측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구해 주는 자의 힘을 입어 먼 외방에 유배되는 것에 그쳤다.】

  【원전】 19 집 48 면

위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 분명 조의정이가 성격이 개차반인건 사실인듯 싶긴하지만 중종의 미움을 산건 확실한듯 싶습니다.

그와 별도로 첫딸인 정순옹주의 남편인 여성위 송인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여성위가 간통한 종이 아이를 배어 낳았는데 그 아이를 밟아 죽이고 그 어미를 장류(杖流)하였으므로, 물의가 시끄럽게 퍼졌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성위랑 간통한 종이 아이를 밴건지 아님 간통한 종을 죽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애랑 그 엄마를 죽인 걸로 봐서 여성위란 놈도 그리 좋은 놈은 아닌듯 싶습니다. 근데 [대간(臺諫)·시종(侍從)이 여러날 동안 번갈아 글을 올렸으나 위에서는 오히려 감싸다가, 양사(兩司)가 합사(合司)하여 사직한 지 대엿새가 되고 대신(大臣)이 또 멀리 귀양보내기를 청한 뒤에야 위에서 마지못해 따랐다. 죄는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은데 귀양에 그쳤으므로, 인심이 시원치 않게 여겼다.] 라고 되어 있으니.. 중종이 여성위는 제법 좋아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음. 그리고, 중종 마누라가 제법 많은 이유가 있는데..
중종반정후 정국공신들이 지 딸들을 중종의 후궁으로 넣습니다. 근데 대부분 친딸이 아니고 수양딸로 친부는 몰락한 양반들 이라는군요. 숙원 이씨의 경우도 그런 경우로 아버지인 이백선이가 뭐하는 양반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죠…

아마도 이래저래 알 수 없는 적당한 후궁 하나를 골라서 연생이로 만들어낸 거 같습니다. 드라마상 연생이가 필요한데. 마땅한 인물을 고른게 숙원 이씨인거 같네요.

대장금은 대장금을 주축으로 하다보니 다른 내용은 제대로 나오지 않지요. 여인천하의 문정왕후와 경빈의 암투가 이 시대입니다. 경빈은 개박살나서 쫒겨나고 뭐 그런 내용이잖아요.
그럼에도 대장금은 여인천하하고 딴세상 얘기 같지요…흐흐…

bada

1 thought on “대장금의 연생이에 대해..”

  1. 잠시 재미로 읽어 보았네요..ㅎㅎㅎ
    우떡해 이런 내용을 알아 내었는지요..
    그 능력이 더더욱 궁금하구료~~1
    자주 들려서는 좀 보겠습니다…
    고마움으로…아셧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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