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나라가 쌍팔년도로 회귀하고 있다.

난 원래 노무현의 가장 큰 치적으로 민주화를 꼽고 있었다.
민주공화국이라고 표방해왔지만.
실제 우리나라가 민주화 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솔직히 남북으로 갈린 우리나라의 남북에 있는 정권은 둘다 군사독재정권이었다.
과거의 허상인 김영삼과 김대중을 지나서
진짜 민주화가 시작된 건 노무현 시절이다.

언론이 마음껏 대통령을 씹어대도 철퇴를 맞을 일이 없는 ...
개나소나 술마시며 안주거리로 대통령을 씹어대도 잡혀갈 일 없는...

그게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거다.
표현의 자유는 조중동이나 TV뉴스방송의 언론이나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걸
대체 언제 알게 될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가 바로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노무현 시절은 바로 이러한 '표현의 자유'를 맛보게 해주었고
대한민국 역사상 대한민국 헌법 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가장 근접할 수 있었다.
크고작은 많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난 그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성장통을 겪으며 이제야 겨우 민주공화국이라는 간판을 내걸만한 나라가 되었는데...
한순간에 과거 군사독재국가의 쌍팔년도 시절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이 집시법의 철폐에 대한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화염병과 각목으로 무장한 시위대에 학을 띤 일반 국민들은
그러한 시위대에 면죄부를 줄 집시법 개정에 반대했고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집시법 개정 주장은 그 명분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공부하지 않고 거리에서 공권력과 폭력투쟁하는 대학생들이 꼴보기 싫어
전대협과 한총련이 박살나는 것을 보면서 후련해하던 어른들과 어린 아이들이 있다.
나 역시 그 어린아이들 중에 하나 였다.

한총련이 없어도 학교에선 매년 등록금 투쟁을 하고
한총련이 없어도 학교에서 크고 작은 시위나 투쟁이 존재한다.
그들의 등록금 투쟁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바이고 그러한 공감은 동의가 된다.
그것이 민주이고 합의라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은 어린애들의 집단인 한총련같은 집단 주도의 시위에서
중고교생, 20대 대학생과 20~30대의 젊은 직장인 30대의 젊은 부모, 그리고 그 품의 아이들.
그리고 그 이상의 어른들까지 나서는 다양한 연령층의 새로운 시위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과거 폭력시위에 학을 띤 사람들의 새로운 시위문화.
이 시위대는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감을 모아 동의를 통해 합의에 이른 사람들이다.
노무현 시절에 이루어진 민주화의 증거중 하나이다.


2MB 정부가 주창하는 실용정부의 실용이란.
쌍팔년도의 군사독재시절로 회귀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수십년 미룬 친일파 군부독재자인 오까모토 미노루의 뒤를 따르는 것이 실용인가?

자...
그럼 이제 다음은 삼청교육대의 부활인가?


b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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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7 14:58 2008/05/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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